계약 만료일이 다가올 때마다 가슴이 쪼여드는 느낌, 혹시 겪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저는 공공기관에서 기간제로 일했던 시절, 매년 11월이 되면 괜히 주변 눈치를 살피게 됐습니다. 2025년 4월,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처우개선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이번 대책의 핵심은 '공정수당' 도입과 1년 미만 쪼개기 계약의 원칙적 금지입니다. 숫자와 조문 뒤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 제 경험을 바탕으로 짚어보겠습니다.
쪼개기계약, 그 교묘한 구조
제가 근무했던 공공기관은 퇴직금 지급을 피하기 위해 계약을 정확히 11개월 20일 단위로 끊는 관행이 있었습니다. 이른바 '364일 계약'입니다. 퇴직금 이란 근로자가 1년 이상 근속했을 때 사용자가 의무적으로 지급하는 법정 금품으로, 근로기준법 제34조와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에 그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이 1년이라는 기준선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반복 계약을 체결하면, 사용자는 퇴직금 지급 의무를 사실상 영구적으로 회피할 수 있습니다.
업무 내용은 바뀌는 게 없었습니다. 담당 민원 창구, 처리하는 서류 양식, 함께하는 팀 구성원까지 거의 그대로였습니다. 그런데 계약서만 매년 새로 작성됐습니다. 이처럼 실질적으로 상시·지속적인 성격을 띠는 업무임에도 단기 계약을 반복하는 방식을 '쪼개기 계약'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 끊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이어지는 계약으로 노동자의 권리를 잘라내는 구조입니다.
이번에 고용노동부가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공공부문 기간제 노동자는 약 14만 6,000명이며 이 중 절반인 약 7만 3,000명이 1년 미만 계약자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에서 이런 관행이 이렇게 광범위하게 이뤄졌다는 사실이 저는 여전히 씁쓸합니다. 제가 겪은 것이 일부 기관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게 데이터로 확인된 셈이니까요.
정부는 이번 대책에서 상시·지속 업무에는 정규직 고용을 원칙으로 재확인하고, 1년 미만 계약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기로 했습니다. 불가피한 경우에는 비정규직 사전심사제(事前審査制)를 통해 업무 특성, 계약 기간, 채용 인원의 필요성을 심사한 뒤 예외적으로만 허용합니다. 사전심사제란 비정규직을 채용하기 전에 그 필요성을 사전에 심사·승인받도록 하는 절차로, 불필요한 비정규직 남용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입니다. 외부 위원을 심사위원회에 반드시 포함하도록 하고, 운영 현황을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반영하는 방향도 검토 중입니다
공정수당, 고용불안에도 가격표가 붙다
이번 대책에서 제가 가장 눈여겨본 부분은 2027년 도입 예정인 '공정수당'의 구조입니다. 계약 기간이 짧을수록 더 높은 보상률을 적용하는 역설적인 설계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계약 기간 1~2개월은 기준금액의 10%, 11~12개월은 8.5%를 정액으로 지급합니다. 단기 계약을 유지할수록 기관이 부담해야 할 수당 비용이 커지는 구조입니다.
솔직히 처음 이 구조를 봤을 때 꽤 신선했습니다. 통상적으로 보상이란 사후에 발생한 손해를 메워주는 개념인데, 공정수당은 고용불안정성 자체를 미리 가격으로 환산해서 지급하는 방식입니다. 고용불안정성이란 언제 일자리를 잃을지 모르는 불확실한 고용 상태를 뜻하며, 단기 계약 노동자일수록 이 심리적·경제적 위험 부담이 큽니다. 그 리스크에 수당을 매긴다는 발상은, 적어도 '고용 불안에도 가격이 있다'는 사회적 인식을 공식화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아울러 정부는 적정임금 기준을 생활임금의 118% 수준으로 설정했습니다. 적정임금이란 노동자가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하기에 충분한 임금 수준을 뜻하며, 최저임금보다 높게 설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태조사에서 1년 미만 기간제 노동자의 월 평균 임금은 약 280만 원으로, 전체 기간제 평균 289만 원보다도 낮게 나타난 만큼, 이 기준이 실질적으로 적용된다면 소득 개선 효과는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다만, 이 대책이 온전히 효과를 발휘하려면 아래 조건들이 갖춰져야 한다고 봅니다.
사전심사제 외부위원의 실질적 독립성확보 — 형식적 심사에 그치지 않도록 외부 위원의 구성기준과 의결권한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공정수당 지급 법적근거 명문화 — 정권교체나 예산 기조 변화에도 제도가 흔들리지 않도록 법령에 명시적으로 규정해야 합니다.
경영평가 반영 기준의 구체화 — 비정규직 비중이 일정수준 이상 늘어난 기관에 대한 평가 감점 기준을 명확히 해야 실효성이 생깁니다.
민간부문 확산 로드맵 마련 — 공공에서만 혜택이 집중되면 민간 비정규직과의 처우 격차가 오히려 심화될 수 있습니다.
풍선효과, 이 정책이 놓칠 수 있는 것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르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책이 선의로 설계됐어도, 현장에서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번 공정수당 대책도 마찬가지입니다. 단기 계약에 높은 수당 부담을 지우면, 일부 예산 압박이 심한 기관들은 채용 자체를 줄이거나 업무를 민간 위탁으로 돌려버릴 유인이 생깁니다.
민간 위탁이란 공공기관이 직접 수행하던 업무를 외부 민간 업체에 맡기는 방식으로, 용역 계약을 통해 이뤄집니다. 이 경우 노동자는 공공기관이 아닌 용역업체 소속이 되어, 이번 대책의 보호 범위에서 아예 벗어납니다. 이른바 풍선효과 입니다. 풍선효과란 한 곳을 누르면 다른 곳이 불거지는 현상으로, 정책의 의도치 않은 부작용을 설명할 때 자주 사용되는 개념입니다.
이라는 우려가 현실이 되지 않으려면, 수당 지급이라는 '사후 보상'에만 머물지 않고, 해당 업무가 상시·지속적인지 여부를 먼저 판단해서 직고용으로 연결하는 구조적 전환이 병행돼야 합니다. 직고용이란 중간 용역업체를 거치지 않고 사용자가 노동자를 직접 채용하는 방식입니다. 2017년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 이후에도 전환 결정이 이뤄지지 않은 기관이 현재 52개소에 달한다는 사실은, 행정 의지만으로는 구조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또한 공공-민간 간 처우 격차 문제도 짚어야 합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이 공정수당과 복지 3종(급식비·복지포인트·명절상여금) 개선 혜택을 받는 동안, 민간 영세 사업장의 비정규직은 고용보험 가입조차 불안정한 경우가 여전히 많습니다. 공공이 모범을 보이는 것은 맞지만, 그 성과가 민간으로 스며들 구체적인 경로가 없다면 일터의 양극화는 오히려 더 선명해질 수 있습니다.
이번대책은 분명 진전입니다. 공공기관에서 단기 계약으로 일했던 사람으로서, '고용불안'이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실제로 보상받아야 할 가치라는 점을 정부가 공식 인정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됩니다. 다만 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법적 근거를 명확히 하고, 민간 부문으로의 확산 경로를 구체화하는 후속 논의가 빠르게 이뤄지길 바랍니다. 혹시 공공기관 비정규직으로 근무 중이시거나 부당한 계약 관행을 겪고 계신다면, 고용노동부가 운영하는 '공공부문 불합리한 관행 상담센터'를 통해 온라인으로 상담을 받아보시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노무·법률 조언이 아닙니다.